부채가 늘어나는 건 얼마나 심각한 일일까?
신문에 제일 자주 등장하는 통계 기사 중 하나가 ‘부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은행의 신용창출(대출)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전체의 부채 총량은 계속 늘어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 늘어난 부채의 총량이 사회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부의 총량이기도 합니다. (대출을 받아 직원 월급을 주듯이 누군가의 빚은 항상 누군가의 소득이나 자산이 됩니다.)
그래서 부채는 늘 조금씩(때로는 꽤 큰 폭으로) 늘어납니다.
부채가 늘어난다는 건 그래서 새로운 소식도 아니고 이상한 일도 아니고, 걱정스럽긴 하지만 어느 수준이 위험 수위인지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부채와 관련한 소식은 대개는 매우 심각한 소식으로 포장되거나 부각되긴 하지만 들여다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거나 <그래서 어쩌라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이야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60대 이상 연령층이 진 빚이 전체 가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도 얼핏 보면 ‘노인들이 웬 빚을 그렇게 많이 지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 숫자 자체가 늘어나는 고령화의 결과일 뿐입니다. (우리나라의 60대 이상 인구 자체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노인이 되면 부채를 서서히 정리하는 게(정확히는 노인이 되기 전에 부채가 대체로 정리되는 게) 보통이지만 우리나라는 다릅니다.
다른 나라는 젊어서 번 돈의 상당액을 세금으로 내든 펀드로 굴리든 결국 노후의 연금용 자산으로 저장되어 있지만, 우리나라는 각자 노후를 대비하는 시스템이어서 자산의 상당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고령층의 부채는 대부분 부동산과 연계된 담보대출이어서 집을 팔아야 부채가 정리되고 줄어듭니다만, 집을 처분하고 다른 곳에 투자할 때 현금흐름이 더 좋아지기 어려운 구조여서 부동산을 노후에도 계속 보유하거나 추가로 구입하고 있습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진 빚도 계속 늘어나는 중입니다.
정부와 지자체, 공기업이 지고 있는 빚을 모두 합한 공공부문의 부채 총액이 1078조원이며 재작년 1년 동안 33조원이 늘어났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하느냐의 잣대가 모호하다는 데 있습니다.
(이게 좋은 소식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부채가 늘었으니 나쁜 소식일 수도 있고 정부가 이런 저런 일을 많이 했다는 의미이니 긍정적인 노력의 흔적일 수도 있습니다.
경기가 끝난 운동선수의 유니폼에 흙이 많이 묻은 것은 그 자체로는 좋은 소식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다른 나라와 부채규모를 비교하는데요.
우리나라 공공부채의 규모는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매우 적은 편에 속하지만 이 역시 좋은 뉴스인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정부가 재정을 매우 효율적으로 아껴왔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아직 고령화가 진전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고(노인들 연금 지급용 자금이 많이 필요하면 부채를 일으켜야 합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하지 않아 국민들이 그동안 각자도생으로 살아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경기가 끝난 운동선수의 유니폼이 비교적 깨끗하다는 그 자체로는 그 경기의 결과가 좋은지 나쁜지를 예측하기는 어려운 것과 비슷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