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여도 은행은 돈을 잘 번다?
금융지주회사들이 요즘 사상 최대 순이익을 올리는 좋은(?) 성적표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하나금융지주도 역대 최고의 순이익을 올렸고, 신한금융지주도 사상 최대의 이익을 발표했습니다.
금융지주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을 자회사로 거느린 금융그룹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신한은행은 신한금융지주라는 지주회사의 자회사인데 신한금융지주 아래엔 신한증권, 신한생명 등 다양한 금융회사들이 자회사로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 은행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신한금융지주의 실적은 신한은행의 실적과 거의 비슷하고 하나금융지주의 순이익은 하나은행이 올린 순이익과 비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하나금융지주의 작년 순이익은 2조4084억원인데 이 가운데 2조1565억원이 하나은행이 올린 순이익입니다.
이렇게 금융지주의 순이익이 사상최고치를 기록한다는 건 은행들이 이익을 많이 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은행들의 순이익도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 은행들의 순이익은 왜 계속 커지나요?
은행들이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올린 것은 맞지만 은행들의 실적을 좀 더 찬찬히 살펴보면 순이익 규모가 3년째 거의 비슷합니다.
바꿔 말하면 사상 최고인 건 맞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거의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와 비슷합니다.
마치 서른살이 된 성인의 키가 사상 최고치라고 해서 ‘요즘 키가 많이 크고 있나 보다’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신한은행은 1년 전보다 순이익이 2% 늘어나는 데 그쳤고, 하나은행은 1년 전보다 이익이 3.4% 증가했습니다.
은행들의 이익이 크게 늘어나지 않은 이유는 요즘이 저금리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은행들은 시중금리가 낮아지면 이익이 줄어듭니다.
은행은 예대마진으로 돈을 버는 구조인데 금리가 낮아지면 그 낮은 금리에서 거둘 수 있는 예대마진이 어쩔 수 없이 작아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대출금리가 15%쯤 되는 시절에는 예금을 12%쯤 주고 받아도 예대마진이 3%포인트 정도 생기는데 대출금리가 3%로 낮아지면 예금금리를 1.5%로 낮춰도 예대마진은 1.5%포인트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리고 금리가 낮은 시절은 경기가 좋지 않고 경제활동도 활발하지 못한 시기라서 대출을 받아가려는 수요도 그리 크지 않습니다.
■ 그럼 저금리 시대에 은행들의 순이익이 줄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늘어나는 이유는 뭔가요?
그건 돈을 빌려갔다가 망해서 돈을 못 갚는 기업이나 개인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중 금리가 워낙 낮다 보니 그 정도 낮은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기업들은 드뭅니다.
(그렇게 잘 버티라고 금리를 낮춰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은행들은 기본적으로 어느 수준의 예대마진은 보장되기 때문에 돈을 빌려간 차주가 돈을 못 갚는 상황이 대규모로 벌어지지만 않으면 어느 정도의 이익은 늘 거둡니다.
그리고 경제 규모가 조금씩 성장하기 때문에 은행의 이익도 조금씩은 늘어납니다.
그러다가 10년이나 20년에 한 번씩 위기가 오면 돈을 갚지 못하는 기업들이 생기고 그 손실을 은행들이 떠안으면서 또 수년치 혹은 수십년치의 이익을 한꺼번에 까먹는 그런 구조입니다.
2017년 초까지 조선∙해운 등 위기 산업의 구조조정(구조조정이라는 게 별 게 아닙니다. 돈을 못갚게 된 걸 인정하고 문을 닫거나 빚잔치를 하고 새로운 주주를 받아들여서 새출발을 하는 걸 의미합니다. 이 과정에서 은행들은 빌려준 돈을 손실처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을 마무리한 후에는 이렇다 할 골칫거리가 아직은 부각되지 않고 있는 것이 은행들이 매년 나쁘지 않은 실적을 거두는 배경입니다.
■ 그래도 이익이 2조 원을 넘긴 건 매우 좋은 성적 아닌가요?
늘 제자리 걸음 수준이라 걱정이라고 하면서도 은행들이 이익을 2조원 넘게 올렸다고 하면 ‘그만하면 잘한 장사’ 또는 ‘소비자들로부터 수수료나 예대마진을 과도하게 챙겨서 거둔 이익’이라는 반응이 있습니다.
물론 2조원이라는 이익이 규모로만 보면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문제는 그 돈을 벌기 위해 투입한 자금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돈까스집을 열어서 1년에 순이익으로 1억원을 번다면 괜찮은 장사라고들 할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돈까스집을 차리는 데 투입한 돈이 100억원이라면, 다들 ‘그냥 그 100억원을 은행에 넣어두고 이자나 받지 그랬냐’고 반문하겠죠.
즉 돈까스집이 장사를 잘하고 있거나 수익성이 높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느냐 아니냐는 1년에 순이익을 얼마나 올리느냐가 아니라 그 장사를 하는데 투입된 돈이 얼마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기업이 장사를 잘하거나 돈을 잘 못 번다고 평가하려면 얼마의 돈을 투입해서 벌어들인 이익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이걸 자기자본이익률이라고 합니다.
은행들의 자기자본이익률은 7~9% 수준입니다.
은행에 정기예금을 한 수준보다는 높지만 그렇다고 크게 높은 편은 아닙니다.
세계적인 유명기업들은 자기자본이익률이 매우 높은데요.
애플은 44%, 마이크로소프트는 14%, 코카콜라는 22%, 맥도날드는 32%, 월마트는 20%, 엑슨모빌은 18%, 보잉은 46%, 삼성전자는 15% 수준입니다.
은행들이 이익규모 자체는 작지 않지만 그 덩치에 그 돈으로 그 정도밖에 못 버는 건 조금 답답한 상황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은행이라는 업종 자체가 요즘은 다 그렇긴 합니다.
엉뚱한 곳에 빌려줬다가 크게 떼이는 일이 줄어든 것만해도 잘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