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가는 브라질도 칭찬하는 시장
브라질은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위기에 빠진 나라들 가운데 그 상황이 심각하기로 첫 손에 꼽힙니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브라질 정부가 코로나19 통제 능력을 의심받고 있다면서 검사조차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서 세계 2위의 확진자 숫자 통계조차 의심스럽다(어쩌면 1위일지도 모른다)고 언급했습니다.
브라질 주요 도시들도 다시 봉쇄를 시작했습니다.
이런 브라질에서 눈길을 끄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브라질 중앙은행이 부실한 브라질 회사들의 회사채도 사들이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 망해가는 브라질이 돈을 마구 찍는다
브라질 중앙은행이 사들이겠다고 발표한 회사채는 신용등급 ‘BB- 이상’ 범위에 있는 회사채인데 이들은 신용도가 매우 낮은 회사들입니다.
중앙은행이 회사채를 직접 사들이기로 결정하는 일은 매우 드물고 이례적인 일인데 심지어 그 대상이 신용도가 낮은 부실기업들인 데다가, 그런 결정을 한 나라가 요즘 전 세계에서 제일 불안한 브라질이라는 사실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중앙은행이 회사채를 직접 사들인다는 것은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부실한 회사들을 지원한다는 뜻입니다.
(돈을 함부로 찍어서 쓴다는 뜻입니다)
기축통화를 쓰는 미국도 이런 일을 노골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안 그래도 불안한 나라 브라질이 이런 일을 하는 건 평소 같으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앞다퉈 브라질을 탈출하는 빌미가 될 만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이 소식이 발표된 후에 오히려 2%가량 올랐습니다.
시장이 브라질 중앙은행의 행동을 칭찬(?)한 것입니다.
■ 브라질만 그런 게 아니다
비슷한 일은 헝가리에서도 벌어졌는데 헝가리가 기준금리를 0.75%(사상 최저수준)로 낮추기로 했지만 헝가리 돈 포린트화의 가치는 별 변동이 없었습니다.
1주일 전만 해도 헝가리는 환율 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할 것이라는 게 시장의 일반적인 예측이었습니다만 오히려 금리를 내렸는데도 환율은 안정된 것입니다.
■ 본격화한 달러 약세
브라질과 헝가리에서 벌어진 두 사건은 요즘 전 세계 어느 나라 외환시장에서도 달러 부족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쉽게 말하면 달러가 흔해서 넘쳐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고 아무리 불안한 일을 저지르는 나라의 통화도 가치가 안정적으로 움직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경기가 위축되면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방법으로 경기를 살리면 된다(이게 현대화폐이론 MMT라고 불리는 정책입니다)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러면 돈 가치가 휴지조각처럼 낮아져서 환율이 급등하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그 나라를 떠날 것이라는 반론으로 그 주장을 억누르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책을 시행한 브라질의 환율은 급등하기는커녕 오히려 내려갔습니다.
어제 우리나라 외환시장에서도 달러∙원 환율은 전날보다 9.4원이 하락하면서 1199원으로 환율이 낮아졌습니다.
글로벌 달러 약세 시황이 우리나라 외환시장에도 반영된 결과입니다.
■ 달러가치는 왜 떨어지고 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달러가 매우 흔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중앙은행이 언제든지 달러를 충분히 공급해서 적어도 금융시장의 문제로 경기가 흔들리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매우 충실히 지키고 있는 것이 그런 변화의 계기가 됐습니다.
(그렇다고들 해석합니다)
그리고 달러의 반대편에 있는 통화들로 구성된 자산들(예를 들면 브라질 주식)이 매우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브라질 중앙은행이 항상 도와준다는 보장에 점점 신뢰가 가고 있으므로 어떤 회사도 투자하기에 불안하지 않습니다.
브라질뿐 아니라 터키와 남아공을 비롯한 10여개국의 중앙은행들이 요즘 브라질과 유사한 정책을 이미 가동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브라질은 뒤늦게 뛰어든 셈입니다.
■ 앞으로 계속 돈을 찍어도 될까
문제는 이런 편안한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냐는 점입니다.
미래의 언젠가 브라질에 투자한 사람 중에 누군가가 ‘브라질은 돈을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찍어서 풀겠구나. 그러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서 결국은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겠구나. 물가가 오르는 건 돈 가치가 떨어지는 일이니 브라질 돈을 들고 있으면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브라질 자산을 팔기 시작하면 상황이 뒤바뀌는 건 순식간입니다.
물론 브라질이 돈을 찍어서 경기를 살리는 일을 일시적으로만 시행하고 멈춘다면 그로 인해 물가가 오르고 통화가치가 떨어지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돈을 찍어서 쓰는 그 손쉽고 달콤한 수단을 정부가 한번만 써보고 그만둘 수 있을까요.
그런 질문에 대해 <세상 여러 나라들이 다 그렇게 절제하더라도 이 나라는 절대 그 마약을 끊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쉽게 드는 나라들부터 탈출이 시작될 것입니다.
정부가 돈을 함부로 찍어서 써도 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자제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자제력이 다른 여러 나라들보다 상대적으로 뛰어나기만 하다면 가능할 것도 같다’는 게 현재까지의 결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