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도는 우유, 값 안 내려가는 이유
우유의 소비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유의 소비는 우유를 주로 소비하는 어린이들의 인구 감소로 계속 줄어드는 중이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학교 급식이 중단되면서 더 가파르게 줄었습니다.
우유의 소비가 감소하는 일은 외국에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유를 버리거나 분유로 만들어 보관하는 정도밖에는 별다른 대책은 없습니다.
수요를 늘리기 어려우니 생산량을 줄이거나 가격을 내려서라도 파는 방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유가 남아돌지만 우유 가격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낙농가에서 사들이는 우유의 가격과 양이 이미 정해져있기 때문입니다.
(우유가격 원가연동제라는 제도 때문입니다)
우유 회사들은 가격이나 물량을 좀 낮추자는 입장이고 낙농가는 약속대로 우유를 사가라는 입장입니다.
그러면 가게에서 파는 우유 가격은 내려가지 않고 우유 가격이 내려가지 않으면 소비가 늘어나지도 않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 우유가격 원가연동제란?
우리나라는 우유를 만드는 곳은 낙농가뿐이고 우유를 생산하는 곳은 우유회사뿐입니다.
우유회사도 우유를 외국에서 사올 수 없고(중간에 상합니다) 낙농가도 다른 곳에 팔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장에서 알아서 가격이 형성되도록 방치하기가 어렵습니다.
우유는 생산량을 늘리려면 적어도 송아지가 우유를 만들 수 있게 되기까지 2년이 걸립니다.
생산량을 빠르게 늘릴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한 번 우유를 짜기 시작하면 같은 양을 매일 계속 짜야 합니다.
생산량을 빠르게 줄일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낙농가와 우유회사는 서로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자칫하면 힘이 강한 쪽이 가격의 주도권을 가져버립니다.
그래서 낙농가에서 우유회사에 우유를 파는 가격은 낙농가의 우유 생산 원가에 비례해서 오르내리도록 정부가 규제를 한 것이 우유가격 원가연동제입니다.
(원래는 최저임금을 정하듯이 정부가 중간에서 협상을 해서 가격을 정했는데 서로 받아들이지 않고 강하게 대립하는 경우가 늘면서 아예 생산비에 따라 변동하도록 만들었습니다)
■ 공급은 늘고 수요는 줄어도 가격은 그대로
그런데 그렇게 원유가격 연동제를 실시한 2013년 이후부터 계속 날씨가 좋아서 우유의 생산량은 늘어나고 소비는 어린이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우유 이외의 다른 대안 식품들이 늘어나면서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원유의 생산원가에 연동하기로 한 우유가격은 계속 올랐고 그래서 우유회사들의 매출과 이익은 계속 감소했습니다.
(소비자가격의 40~50%가 우유 원가입니다)
그래서 우유 소비가 줄어들면 가격을 낮춰서라도 팔 수 있게 우유 생산가격 연동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우유 가격이 낮아져야 낙농가도 젖소를 줄이든 생산량을 줄이든 생산원가를 낮추든 다른 업종으로 업종전환을 하든 노력을 할 텐데 지금의 구조는 낙농가가 우유회사로부터 사실상 정해진 월급을 받는 종신 직원과 비슷한 구조여서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게 우유회사들의 주장입니다.
■ 그래도 유가연동제는 필요하다?
이런 논란의 근본적인 이유는 우유 회사들이 우리나라 낙농가에 의존하는 비율이 과거보다 줄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소비하는 우유가 대부분 흰우유였고 그건 낙농가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유회사 입장에서도 낙농가들이 우유를 안정적으로 생산해주는 게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원유가격 연동제 등 낙농가들이 안정적으로 우유를 생산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소비자들의 기호가 흰우유가 아닌 치즈 등 각종 유가공 제품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흰유유가 아닌 유가공 제품이라면 우유회사들은 굳이 원료가 되는 우유를 우리나라 낙농가에서 조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외국에서 분유 형태로 들여와 가공하는 게 더 저렴합니다.
(수입 원유가격은 우리나라 가격의 3분의 1입니다. 수입산 쇠고기가 한우보다 싼 이유와 비슷합니다.)
낙농가 입장에서는 이제 쓸모가 줄었으니 생산을 줄이고 스스로 도태되라는 메시지여서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반대 쪽에서는 도태되라는 게 아니라 변화하라는 뜻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 농가의 낮은 경쟁력이 원인
우리나라 농가들은 자본과 인적자원과 토지 등이 모두 부족해서 쌀이든 우유든 다른 나라의 생산품에 비해 생산원가가 비쌉니다.
그걸 보호하려면 비싸지만 사주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비싸지만 사주다 보면 계속 비싸게 생산하고 생산비를 낮추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러다 보면 소비자들이 외면하고 상황은 계속 나빠집니다.
쌀의 경우도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높은 가격에 매수해주는 제도를 운영하다 보니 농가 입장에서는 쌀을 생산하는 게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농사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쌀 생산량만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나타납니다.
정부가 지원을 하면 천천히 추락하고 지원을 하지 않으면 빨리 몰락하는 상황이 농산물의 여러 분야에서 계속 불거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