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통화량의 1%만 주식시장으로 움직여도 주식시장의 분위기는 뜨거워진다
요즘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이유를 물어보면 '코로나 때문에 시중에 푼 돈이 주식과 부동산 가격을 올린다'라고 설명합니다.
시중에 유동성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도 설명합니다.
돈이 많이 풀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위 말은 모두 같은 말입니다.
■ 돈이 정말 많이 풀렸을까요?
그런데 돈이 얼마나 더 풀렸기에(유동성이 얼마나 더 늘었기에) 그렇게 된건지 그 수치를 확인해보려고 하면 그 수치를 함께 제시하는 설명은 찾기 어렵습니다.
전국의 모든 가정에게 뿌려진 재난지원금 14조원은 새로 풀려나온 돈이 아닙니다.
정부가 국채 발행이나 과세 등을 통해 시중에 이미 존재하던 돈을 정부 주머니로 가져와서 국민들에게 다시 나눠준 겁니다.
그러니 그로 인해 시중에 유동성이 더 늘어날 이유는 없습니다.
■ 돈은 많이 안 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시중에 풀린 돈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건 틀린 말입니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의 양은 늘긴 늘었지만 평소 증가세보다 조금 더 늘어난 수준이고 그 증가폭도 미미해서 주식과 부동산 가격을 눈에 띄게 들어올릴 규모가 아닙니다.
시중의 유동성을 시중에 풀린 돈의 양이라고 정의한다면 그 양은 매월 매우 정확하게 집계됩니다.
여러 통화량 지표중에 현금, 수시입출금식 예금, MMF, 2년미만 정기예금 적금 2년 미만 금융채 등을 모두 합한 M2라는 통화량 지표는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3018조원인데 4월 한 달간 34조원이 늘어났습니다.
한 달에 1.1%가 늘었으니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이 2980조원일 때는 별로 안오르던 자산 가격이 3020조원이 되니 크게 오르는 건 늘어난 돈의 양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 오를 거 같단 조급함이 가격을 올렸다
그럼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왜 무엇때문에 오르는 걸까요?
시중에 풀려있는 3000조원 안팎의 돈 가운데 ‘주식이나 부동산이 오를 것 같다’고 느끼는 돈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그건 시중의 통화량 자체가 늘어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로 생길 수 있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면 주식시장에 매수 대기자금으로 불리는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해말 27조원에서 최근에는 50조원까지 늘어났습니다.
요약하자면 시중에 돌아다니던 돈 가운데 약 23조원의 돈이 주식시장으로 몰려왔다는 뜻인데요.
23조원의 돈은 시중에 돌아다니는 전체 통화량의 1%도 채 되지 않는 금액입니다.
즉 시중에 돈이 더 풀리고 안 풀리고와 무관하게 이미 풀려있는 돈 가운데 1%만 주식시장으로 움직여도 주식시장의 분위기는 이렇게 뜨거워진다는 뜻입니다.
주식이나 부동산이 오르는 건 돈이 더 많이 풀렸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풀려있는 돈 가운데 일부가 그런 자산에 투자하는 쪽으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 풀리는 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시중에 풀려나오는 돈의 양은 매년 거의 일정합니다.
시중 통화량 지표를 보면 매년 비슷하게 증가합니다.
어느 해는 통화량이 줄어들고 어느 해는 폭발적으로 늘어나지 않습니다.
매년 비슷하게 증가합니다.
그런데도 어느 해에는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하고 어느 해에는 매우 상승하는 것은 시중에 풀려있는 돈의 양 또는 그 해에 새로 풀려나온 돈의 양과 자산 가격의 움직임은 별 관계가 없다는 걸 알려줍니다.
가끔 관계가 있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주택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는 가계대출의 규모가 늘어나면 그러면 통화량도 늘어나고 주택 가격이 오릅니다.
그러나 그건 주택을 구입할 때 대부분 대출을 사용하기 때문에 우연히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일 뿐 대출이 늘어난 것이 주택 가격을 올리는 건 아닙니다.
대출을 전면금지해도 주택 가격은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으니까요.
자산가격의 움직임은 통화량과 무관하게 전적으로 ‘돈을 소유한 사람들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요즘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건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주식이나 부동산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케이스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산 가격의 상승을 <돈이 풀린 탓>으로 보고 풀려나오는 돈의 양을 줄이거나(대출을 억제하거나 금지하면 풀려나오는 돈의 양도 같은 정도로 줄어듭니다) 재난수당 지급을 중단한다고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게 멈출 이유는 없습니다.
설명드린 대로 이미 풀려있는 돈의 아주 일부만 움직여도 자산 가격은 크게 움직이니까요.
시중에 유동성이 많이 풀려서라는 설명은 그래서 틀린 설명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시중 유동성을 시중에 풀린 돈의 양이라고 정의하지 않고 시중에 풀려있는 돈이 가진 에너지라고 정의하면 시중 유동성 때문에 자산이 오른다는 설명은 맞습니다.
문제는 돈이 많이 풀려서 자산이 오른다는 그런 설명과 해석을 많은 전문가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 말을 받아들이고 ‘이미 풀린 돈이 다시 회수돼서 그 양이 줄어들지는 않을 테니 풀린 돈 때문에 부동산과 주식이 오른다면 부동산과 주식은 계속 당분간 오르겠구나’라고 생각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풀린 돈의 양과는 무관하게 부동산과 주식이 계속 오릅니다.
사람들이 ‘시중 유동성 때문에’ 계속 오를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 자산시장=심리게임
그러나 실제로는 시중에 풀린 돈의 양과 자산의 가격은 거의 무관하기 때문에 자산 가격을 좌우하는 변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산가격의 전망’일 뿐입니다.
쉽게 말하면 지금은 자산시장을 둘러싼 심리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자산시장은 거의 언제나 늘 심리게임의 결과입니다.
■ 위험자산에 투자할 이유가 늘었다
그럼 그런 심리는 왜 생기는 걸까요.
이게 매우 중요하고도 어려운 질문인데요.
조금 전에 설명드린 ‘돈이 많이 풀렸으니 자산 가격은 당연히 오를 것’이라는 집단심리 이외에는 ‘저금리’가 그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금리가 낮으면 투자한 자산이 매우 조금만 오르더라도 투자의 보람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금리가 되면 다들 오를 만한 자산을 과거보다 더 자주 많이 찾게 되는데 주식이나 부동산은 늘 그런 수요의 타깃이 됩니다.
‘시중 금리가 1%이니 이 주식 또는 이 아파트에 투자했다가 연간 2%만 올라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지면 연간 2% 정도를 기대했던 수익률은 그 수급의 불균형으로 인해 20%가 되기도 하고 200%가 되기도 합니다.
요즘 주식이나 부동산이 오르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