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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뉴스

저금리 현상은 왜 계속될까

인류가 지구에서 경제활동을 시작한 이래 요즘처럼 낮은 이자율이 적용되던 시기는 없었습니다.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여러가지 걱정들도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주택가격이 오르고 가계부채가 늘어나서 위험이 커진다는 게 가장 큰 불안요인입니다.

 

 

■ 저금리 현상이 계속되는 이유는 뭔가요?

간단히 요약하면 돈이 남기 때문입니다. 돈을 빌려다가 뭘 하겠다는 수요는 늘지 않는 반면 돈을 남에게 빌려주고 싶다는(내가 직접 그 돈으로 뭘 투자하기는 싫다는) 공급량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리 아이켄그린이라는 미국 버클리대 교수는 요즘 이자율이 낮아지고 있는 이유를 몇가지로 분석한 바 있는데 하나하나가 고개를 끄덕일 만합니다.

 

이자율이 계속 낮아지는 이유는 과거와는 달리 신흥국들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탓입니다.

선진국의 국민들은 돈을 벌면 대부분 써버리는데 신흥국 국민들은 대부분을 저축합니다.

그 이유는 선진국에서는 나중에 돈이 필요하면 다시 빌리면 되지만 신흥국에서는 금융이 발달하지 않아서 그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은 노후 보장을 국가가 대부분 해주지만 신흥국은 ‘각자도생’을 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신흥국들은 인구구조상 젊은이들이 더 많습니다. 젊은이들은 노인들보다 저축의 욕구가 더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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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들은 심지어 국가가 거액의 돈을 저축하기도 합니다.

외국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외환보유액이라는 이름으로 금고에 그냥 쟁여둡니다.

미래에 혹시 달러 조달에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하는 겁니다.

 

이렇게 신흥국들이 벌어들이는 돈이 많아지면 그 돈은 대부분 저축으로 쌓입니다.

그리고 그 돈은 돈을 빌려주려는 자금의 공급원이 됩니다.

이자율이 돈의 임대료라면 공급이 늘어날수록 그 임대료는 낮아지기 마련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경제성장의 스타일 또는 투자의 패턴이 달라졌기 때문인데요.

그런 까닭으로 자금을 필요로 하는 수요처나 그 규모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대규모로 땅을 사고 공장을 짓고 비싼 설비를 사다넣고 인력을 대규모로 채용해야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어떤 투자든 큰 돈이 필요했고 그만큼 돈을 빌리려는 수요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사업의 규모나 방식이 과거에 비해 투자가 덜 필요한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과거에 비해 최근의 혁신들은 뭔가를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종전에 있었던 것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것으로 혁신의 방향이 달라진 것도 자금수요가 크지 않게 된 이유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마존, 페이스북, 우버, 구글 같은 회사들은 뭔가를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종전에 이미 존재하던 것들의 유통 방식을 바꾸는 사업을 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사업에는 과거처럼 큰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지 않고 그래서 주식을 추가로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어쩌면 주가가 계속 오르는 지도 모릅니다.

 

세 번째 이유는 인구 증가율의 감소입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출산율은 떨어지기 마련인데 그 이유는 여성들의 사회 참여로 인한 기대소득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맞벌이를 해서 벌 수 있는 돈이 많아지다보니 아이를 기르는 것에 따른 기회비용이 커진 겁니다.

그런 이유로 인구 증가율이 줄어들면서 돈이 될만한 사업들이 많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인구가 계속 늘어난다면 설탕물을 병에 담아 팔아도 매년 매출이 늘어날 테지만 인구 증가율이 감소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할 만한 사업을 찾기가 쉽지 않아집니다.

역시 자금의 수요를 줄이는 요인입니다.

 

 

■ 저금리는 나쁜 것일까요?

저금리는 좋거나 나쁜 게 아니라 그냥 현상입니다.

모든 현상에는 장점과 단점이 다 있습니다.

저금리가 나쁘냐는 질문은 겨울이 나쁘냐는 질문과 비슷합니다.

겨울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고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 겨울 자체는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닌 것처럼 저금리도 그렇습니다.

 

저금리의 좋은 점(근로자의 입장에서 볼 때 좋은 점)은 근로의 가치가 자본의 가치보다 높아진다는 데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금리가 높으면 주머니에 1억원이 있는 사람이 한달에 100만원을 버는 사람보다 더 현금흐름이 좋지만 금리가 낮으면 한달에 100만원을 버는 사람의 가치가 더 높아집니다.

 

(자산보다 노동력을 갖춘 근로자의 입장에서 볼 때) 저금리의 나쁜 점은 ‘저금리가 극복되는 과정에서 자칫하면’ 자산 가격이 오르게 된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하면 집값이 오른다는 건데요.

경기가 너무 나빠서 생긴 저금리 구간에서는 집값도 오르지 않습니다만 경기가 바닥은 찍은 것 같은 상황이 되면 저금리를 바탕으로 집값이 크게 오릅니다. (그렇다고 금리를 올리자니 경기가 더 나빠질까봐 걱정입니다)

 

 

■ 저금리가 집값을 올리는 거 아닌가요?

저금리 상황에서 집값이 쉽게 오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를 들어 10억원짜리 집에 전세가 5억원이라면 전세를 살지 않고 집을 구입해서 사는 사람은 1년에 5억원에 대한 이자만큼 손해를 보면서 집값 상승을 기대한다는 뜻입니다.

이자율이 10%라면 5억원의 1년 이자는 5000만원이므로 매년 집값이 5000만원은 올라야 집을 구매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수지가 맞습니다만, 이자율이 1%로 낮아지면 집값이 1년에 500만원만 올라줘도 전세보다는 매입이 더 유리합니다.

그래서 금리가 낮아지면 설마 1년에 500만원 안 오르겠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집 매수자들이 늘어납니다.

 

(정확히는 가격이 내릴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되는 인기지역의 집의 수요가 늘어납니다. 저금리라도 집값이 하락하면 매수자는 손해니까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계부채도 늘어납니다.

늘어난 가계부채는 이자로 지출되는 돈이 많아지게 만들고 결국 사람들의 소비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나중에 추가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여지를 줄이기도 해서 미래에 부담요인이 됩니다.

 

그러나 저금리가 <사람들이 너무 빌리려고 하지 않고 너무 저축만 하려고 해서> 생긴 것이었다는 설명을 잊지 않는다면 <저금리 때문에 사람들이 돈을 너무 빌리려고만 한다>는 걱정은 아이러니입니다.

오히려 걱정하던 저금리 상황이 해소되는 과정일 테니까요.

집값이 오르면 건설업자들이 이윤을 위해 집을 더 지어서 공급하게 되고 집값은 다시 안정됩니다.

 

 

■ 정리하면...

집값이 오르는 원인은 저금리가 아닙니다.

저금리와 집값은 인과관계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금리가 높던 시절에도 집값은 오른 경우가 많았고 금리가 낮을 때 집값이 더 내린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다만 어떤 이유(수급 불균형, 소득의 증가, 취향의 변화 등)로 집값이 오를 원인이 제공될 때 공교롭게도 금리가 낮으면 과거보다 더 쉽게 불이 붙는 건 사실입니다.

집값이 오를 다른 원인이 있을 때 저금리는 그 요인을 증폭시키기는 하지만 집값을 올리는 원인 그 자체는 아니라는 걸 기억하면 금리를 올려서 집값을 잡자는 건 솔루션이 되기 어렵다는 걸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