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현금이 부족한 현상입니다.
사람들이 공포감이 생기면 대형 마트에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생필품을 사재기하듯 금융시장에서도 공포감이 느껴지면 당장 필요하지 않은 현금이라도 사재기를 합니다.
평소에 필요한 만큼만 현금을 갖고 있던 시장에서 필요 이상으로 사재기를 하면 필요한 곳에는 현금이 제때 돌아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현금이 필요한데 못 구한 곳에서는 우량한 채권도 헐값에 팔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우량한 채권의 가격이 하락합니다.
1년후에 1만원을 돌려주는 채권이 9800원에 거래되면 금리가 약 2%인 것이지만 그게 9000원에 거래되면 금리는 11% 정도인 셈입니다.
채권값이 하락하면서 금리는 그렇게 오릅니다.
금융회사들이 내던지는 채권을 받으면 연 10% 이자율을 챙길 수 있는데 연 3~4%에 돈을 빌려줄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시중 이자율이 곧바로 10%로 오릅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내렸지만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의 이자율이 오히려 오른 건 그런 이유 탓입니다.
이럴 때는 ‘누군가’가 사람들이 내던지는 채권을 사줘야 합니다.
그래야 채권 가격이 올라가고 금리가 하락하고 시장이 안정됩니다.
한국은행이 그 ‘누군가’의 역할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금융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채권을 시장에 내던지지 말고 한국은행에 갖고 오면 그 채권을 담보로 매우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발표한 겁니다.
시장에서는 이걸 한국형 양적완화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담보로 받고 돈을 빌려주는 채권이 매우 우량한 채권들이라는 점입니다.
한국은행의 이 결정으로 매우 우량한 채권들의 이자율은 내려가겠지만(한국은행에 맡기고 돈을 빌리면 이자가 싸므로 굳이 낮은 가격에 채권을 시장에 던질 이유가 없어집니다) 한국은행이 받아주지 않는 덜 우량한 회사채들은 채권안정펀드 등 다른 정책 수단을 통해 소화해야 합니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때도 안 쓴 정책을 꺼내든 이번 위기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보다 심각해서가 아니라 위기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는 모두 달러화 부족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한국은행이 뭘 어떻게 도와줄 길이 없었지만 이번 위기는 원화의 유동성 경색이 원인이므로 한국은행이 나설 여지가 있었습니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의 이 정책을 양적완화라고 부르지만 미국이나 일본이 쓴 양적완화와는 좀 다른 정책입니다.
우리나라는 금리가 제로금리가 아니기 때문에 양적완화는 의미가 없는 정책입니다.
시장의 채권을 사들이고 그 대신 현금을 시장으로 보내는 정책이 양적완화인데, 그렇게 현금을 시중에 공급하면 시중에 돈이 흔해져서 금리가 내려갑니다.
그런데 기준금리가 제로금리가 아니면 시중에 공급한 현금때문에 금리가 내려가면 기준금리 수준으로 다시 금리를 올리기 위해 시중의 현금을 다시 흡수해야 합니다.
괜히 현금을 내보냈다가 다시 빨아들이는 것이라 이런 일은 할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이번에 한국은행이 꺼내든 카드는 금융기관들의 현금 사재기로 인해 부족해진 현금을 일시적으로 공급하는 정책입니다.
이렇게 한국은행이 현금을 공급하기 시작하면 사재기를 할 필요도 없어지고 그러면 저절로 현금이 돌기 시작해서 한국은행이 돈을 공급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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