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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뉴스

정부가 살린 기업, 이익은 누가 챙길까?

코로나 바이러스나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파도와 만나면 많은 기업들이 위기를 맞습니다.

꼭 그런 위기가 아니더라도 꽤 중요한 기업이 위기를 맞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큰 기업은 웬만해서는 안 쓰러지기 때문에 큰 기업이 쓰러질 정도면 아주 큰 병에 걸렸다는 뜻입니다.

이럴 때는 정부 아니면 나서서 해결할 주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자금을 빌려주고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정부는 그 대가로 뭘 받아야 할까요.

이 질문은 요즘 기업에 긴급자금을 지원해야 하는 정부가 풀어야할 숙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냥 빌려준 돈만 받아가고 아무것도 못 가져갈 수도 있고(정부는 바보?), 아니면 그 기업이 망하기를 기다렸다가 정부가 인수할 수도(정부는 욕심쟁이?) 있습니다.

그 중간 어디쯤이 최적점일 텐데 그게 어디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런 원칙도 관례도 없습니다.

그때그때가 다릅니다.

 

 

■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죠?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가장 먼저 위기에 빠진 미국 대기업은 델타항공 등 항공사들입니다.

돈이 필요하긴 한데 미국 정부가 대출만 해줄 것이냐 투입한 돈만큼의 지분을 가져올 것이냐의 문제로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결과는 전체 지원 자금의 30% 가량은 무상지원(그냥 주는 돈입니다. 다만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고 월급을 주는 목적으로 써야 합니다), 15% 정도는 저리대출입니다.

대출금의 10%에 해당하는 금액만큼은 최근 주가로 그 정도 금액의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도 가집니다.

회사가 회생했을 때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매우 미미합니다.

만약 민간 사모펀드라면 파산하길 기다리다가 헐값에 인수했을 겁니다.

직원과 조종사는 그 후에 다시 뽑으면 되니 어차피 고용인원은 마찬가지입니다.

 

 

■ 미국은 늘 이런 방식인가요?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지만 투입 방식은 제각각입니다.

미국 정부가 최근 시행한 대표적인 구제금융은 보험사 AIG 사례입니다.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이 회사가 어려워지자 미국 정부(재무부)는 이 회사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이 회사의 지분을 아예 사들였습니다.

한때 AIG 지분의 92%를 미국 재무무가 보유하고 있기도 했으나, 4년 만인 2012년에 보유 지분을 시장에서 모두 매각했습니다.

 

이렇게 정부가 공적자금을 지원할 때는 그 돈으로 그 회사 주식을 사서 나중에 그 회사가 좋아지면 이자 수익이 아닌 ‘투자 수익’을 얻는 게 합리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 우리나라는 왜 그렇게 안 하나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그게 꼭 쉽지만은 않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우리은행입니다.

우리금융은 과거 IMF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에 돈을 빌려줬다가 떼인 부실은행들(한빛은행, 평화은행)을 끌어모으고 정부가 새로 자금을 투입해서 새로 만든 은행입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13조원가량을 투입해서 지분 100%를 보유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우리금융 지분을 아직도 모두 매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왜 그렇죠?

주가가 비쌀 때는 매수자가 안 나타나고, 쌀 때 팔면 헐값 매각이라고 하기에 그 여론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그 지분을 인수할 만한 주체는 대기업 아니면 외국계 자본입니다.

대기업이 인수하면 금산분리 원칙 훼손, 외국계 자본이 인수하면 투기자본에 매각이라는 비난이 나와서 팔기 어렵습니다.

결국 시장에 조금씩 매각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논란입니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한 후에 그걸 다시 회수하고 현금화하는 과정의 일관된 관행과 전례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잡음입니다.

자본시장이 덜 발달해서 거대자본을 소유한 투자자그룹이 적은 것도 이유입니다.

 

우리금융 이외의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지분을 보유하고 경영까지 하고 있다가 다른 기업에게 넘길 때 그 기업의 가치를 어떻게 산정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 기업을 인수하는 주체도 대기업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경기가 나빠서 가격이 낮을 때는 특혜 시비가 생깁니다.

반면 경기가 좋을 때 매각하면 인수 기업은 너무 비싼 비용을 지출한 탓에 쓰러지기도 합니다.

대우건설을 인수했다가 탈이 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좋은 사례입니다.

 

그래서 정부가 위기 때 자금을 지원한 후에 그 회사 지분을 받아오는 걸 우리는 그동안 대단히 불편하게 생각하거나 꺼려했습니다.

그 덕분(?)에 부실한 기업은 정부 자금으로 되살아나면 다시 원래 주인에게 되돌아가곤 했습니다.

 

 

■ 다른 사례는 어떤 게 있나요?

미국의 자동차 회사 GM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위험해지자 아예 파산을 시켜버리고 남은 자산을 정부가 인수해서 새로운 회사를 만든 사례입니다.

미국 재무부는 이 <새로운 GM>에 500억 달러를 투입하고 60%의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2009년의 일입니다.

 

미국 정부는 이 지분은 2011년 GM을 증시에 다시 상장시키면서 보유 지분의 절반 가량을 투자자들에게 팔았습니다.

남은 지분도 2013년까지 모두 매각했는데 처음에 투입한 자금에 비해서는 100억달러 넘는 손해를 봤습니다.

 

손해를 보고도 파는 결정을 정치적 부담없이 할 수 있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는 과정에 참여했던 공무원이 기소되는 사건 이후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매각이 더 지지부진해졌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 게 일반적인 방식이었나요?

지난 2016년 한진해운이 어려워졌을 때는 정부 소유 은행인 산업은행이 한진해운에 자금을 빌려줬습니다.

그때의 조건은 한진해운 대주주의 시아주버니(남편의 형)인 조양호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서 산업은행에 담보로 맡기라는 조건이었습니다.

돈을 빌려줘서 살릴 수 있을 것 같으면 빌려주고 아니면 포기하고 파산시키면 그만인데, 대출은 해주되 다른 관계자가 보증을 서라는 대단히 한국적인 해법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어려운 기업에게 정부가 돈을 빌려줘왔습니다.

그러다가 그 기업이 회생하지 못하면 그제서야 빌려준 돈을 주식으로 전환합니다.

잘 살아나면 빌려준 돈만 받아 나옵니다.

왜 정부가 위험을 떠안고 돈을 빌려줘놓고 아무것도 못받아나오느냐는 비판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 비판이 있을 것을 알기 때문에 대출을 해줄 때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경영이 어려워진 기업이 대출을 받을 때 대주주가 사재를 출연할 의무는 없습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다른 주주들은 가만히 있는데 대주주는 사재를 출연해야 하고 그 덕분에 회사가 살아나면 다른 주주들도 대주주와 동일하게 주가 상승의 혜택을 봅니다.

대주주는 소액주주에 비해 더 많은 책임과 의무를 지는 셈입니다. 그건 평소 대주주의 전횡을 합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정부도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서 앞으로는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되 대출형식이 아닌 지분 확보 방식도 포함하겠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대한항공에는 1조2000억원을 대출하면서 3000억원어치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일종의 전환사채인 셈입니다.

이 돈이 나중에 주식으로 전환되면 대한항공 지분 10%에 해당합니다.

 

1조2000억원 전체를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도 일리가 있고 100억원어치만 주식으로 전환하도록 하자는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이익을 국가가 공유해가야 하느냐는 기준이 없으니까요.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면 파산할 것이고, 파산하고 나면 헐값에 인수할 수 있으니 그 헐값을 가정해서 지분을 인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고용을 유지할 것’을 대출의 조건으로 삼고 있습니다.

 

대출을 받아간 회사가 고용을 유지하든 말든 그건 돈 빌려준 쪽에서 간섭할 일은 아닙니다.

정부는 고용을 유지하라고 요구하기 위해 대출금의 상당 부분을 주식으로 전환할 권리를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