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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뉴스

기름값이 당분간 오르기 힘든 이유

 

요즘 국제유가가 단기적으로 꽤 반등했습니다.

WTI(서부텍사스산 원유) 선물 기준으로 20달러에서 28달러로 사흘 만에 40%가 올랐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앞으로는 뭐가 유가의 변수가 될 것인지가 오늘 생각해볼 주제입니다.

 

■ 유가는 왜 올랐나요?

요즘 유가가 많이 내린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수요 감소.

그리고 또 하나는 사우디와 러시아의 증산 결정(감산 합의 실패)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요인에서 변수가 생겼습니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감산에 합의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윗을 통해 전해지고, 러시아 푸틴 대통령도 하루 1000만배럴 정도의 감산 논의가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1000만 배럴은 러시아와 사우디의 하루 산유량의 절반 정도의 규모입니다. 즉, 이 감산이 합의되면 평소의 절반 정도만 생산하겠다는 뜻이 됩니다.)

 

이번 주 목요일(4월 9일)에 그런 안건으로 OPEC+ 회의가 열립니다.

최근의 유가 반등은 감산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반응입니다.

 

* OPEC 회원국들은 이라크, 이란,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리비아 등 14개국이고 그 이외의 비 OPEC 산유국(러시아, 미국, 멕시코,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노르웨이) 10개국까지 합한 조직이 ‘OPEC+’입니다.

 

 

■ 과연 감산 합의가 될까요?

산유국들 사이의 감산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이유가 있습니다.

감산에 합의할 경우에도 감산하지 않는 나라가 이익을 보고 감산 합의에 실패하더라도 감산하지 않는 나라가 이익을 보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산유국이 감산에 합의하면 석유가격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 부담은 감산하는 나라가 지고, 그로 인해 올라간 석유가격의 수혜는 감산 합의를 지키지 않은 나라가 가져갑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감산을 하지 않는 게 이익입니다.

감산에 동참하지 않은 사실을 적발한들 다른 산유국들이 그 나라를 제재할 수단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는 100달러를 넘어섰던 유가가 2014년부터 하락하기 시작해서 2016년에는 요즘 유가인 26달러선까지 내려왔습니다.

이때 산유국들은 감산에 합의했는데 미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산유량을 계속 늘렸습니다.

국영 석유기업이 석유를 캐내는 사우디나 러시아 그 밖의 산유국들과는 달리 미국은 개별 기업들이 석유를 채굴하므로 감산을 하라 말라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감산에 동참하지 않는 게 이익인 구조에서는 사기업의 경우 감산을 할 리가 없고 감산에 동참하는 것 자체가 미국에서는 반독점법 위반입니다.)

특히 사기업들은 기업들마다 재무구조와 원가구조가 달라서 일률적으로 일정량의 감산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미국이 감산을 하기 어려워지면 다른 나라들도 감산을 하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유가가 하락해서 재정이 어려워지는 국가나 기업일수록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석유를 더 캐내야 한다는 점도 딜레마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구조 속에서는 감산에 따른 유가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쪽에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 그럼 유가는 어떻게 되나요?

하루 1000만 배럴의 감산도 유가를 끌어올리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지난 1분기 석유 수요는 평소에 비해 하루 평균 1600만배럴이 줄었습니다.

4월에는 하루 2000만배럴의 수요 감소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작년 말 기준 사우디와 러시아의 산유량을 합하면 하루 2000만배럴 수준이고, 미국까지 합하면 하루 3300만배럴 수준입니다.

거기에 다른 OPEC 산유국들의 생산량까지 합하면 하루 5500만배럴입니다.

 

공급의 조절로는 유가를 움직이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이해한다면 유가의 동인은 이제 하나 남았습니다.

‘수요’입니다.

수요에 대한 기대감이 얼마나 살아날지에 따라 유가는 오르내릴 것입니다.

그 수요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억제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므로 역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억제 정도가 유가에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입니다.

(요즘 세계 경제의 모든 결론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모든 게 바이러스에 달렸다.”)

 

수요가 회복되기 전에 맞이하게 될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요즘 원유 수요는 산유량보다 하루2000만배럴 정도 부족합니다.

한 달이면 약 5~6억 배럴의 원유가 남게 된다는 뜻인데 세계의 남아있는 원유 저장 공간은 10억배럴이 채 못 됩니다.

 

그럼 잠시 뚜껑을 닫아놨다가 다시 캐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유전은 잠시 뚜껑을 닫으면 다시 캐내는 게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돈을 주고라도 뽑아내야 합니다.

그러다가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해 쓰러지는 석유회사들이 생기면 그게 자연스런 감산효과를 가져옵니다.

물론 그 전에 전 세계적으로 석유 저장시설 건설 붐이 불지도 모르겠습니다.